뉴스/정치/사회 프랑스가 못사는 나라라고 무시했던 한국여성의 한마디,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은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박병선 박사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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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방치되어 있던
한국의 물건을 찾은 한국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서양의 성역으로 불리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인
요하네스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섰던 한국의 금속활자를
발견했다고 발표를 했으나...
전 세계 학자들에게 박수가 아닌
엄청난 비난과 무시를받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1923년 경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여성 최초로 유학비자를 받은 박병선 박사는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전 세계의 역사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소르본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정말 학구열에 불탔던 박병선 박사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유학길에 오를 때 스승인
이병도 교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한국으로부터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에서 반드시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는데요.
하지만 약 100년 전 프랑스로 넘어간 물건은
어디에 있는지 작은 단서 조차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 한 결과,
그녀가 택한 방법은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1967년부터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동양 문헌실을 모두 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려 13년 동안 도서관을 서적을
샅샅히 뒤졌습니다.
그런데 한국 고서를 정리하던 중
구석에 끼여있던 오래된 고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꺼내든 그녀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 오래된 고서가 놀랍게도
또 다른 우리의 보물
'직지심체요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발견은 그녀에겐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한국의 금속활자본으로
1372년에 제작하기 시작했고
1377년에 간행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일부는 직지심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정확한 표현은 직지심체요절이 맞는 표현입니다.
1972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열린 고서 전시전에서
박병선 박사는 새로운 최초의 존재를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엄청난 발견 앞에 박수 갈채가 아닌
수 많은 학자들이 그녀를 비판하면서
그럴리 없다는 무시가 날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모두 잘아시는 것처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나라에서
그보다 더 빠른 금속 활자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박병선 박사는 혼자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야하는
엄청난 시련을 맡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진행되었던 국제적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고 입증하는데 온힘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구텐베르크보다 75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에서
한국의 직지심체요절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박병선 박사는 홀로 프랑스에 연구하면서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내고 만 것이죠.
이 사건은 정말 전 세계 수많은 학자들을
멘붕에 빠뜨린 사건이라고 합니다.
200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 유산으로
직지심체요절이 오르게 되는데
사실상 박병선 박사가 해낸 것이나
다름 없는 정말 다단한 업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병선 방사를
'직지대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외규장각의궤의 행방을 알 수 없었기때문인데요.
1975년 박병선 박사는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외규장각의궤를 찾기 위해 파손된 책들을 모아둔
프랑스국립도서관 베르사유의 별관 창고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왠 한국 고서를 발견하게 되었는,
책을 펼친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합니다.
이 한국고서가 바로 그토록 찾아 해매던
외규장각 의궤였던 것입니다.
조선왕실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았던 날
온 몸이 마비가 될 정도로 감동했다고 합니다.
일생을 바쳐서 그토록 찾아해메던 것을 찾았으니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네요...
그런데...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리면서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측으로부터
사표를 강요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쫓겨나듯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서
계속 연구를 했어야 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10년이 넘도록 개인 자격으로 매일 가서
한국의 역사를 되찾는데 몰두했습니다.
박병선 박사의 모든 연구를 담은 '조선조의 의궤'
책이 출간되면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반환 운동이 일어났고 더이상 못본척할 수 없었던
프랑스 정부는 2011년 6월 조금 황당하지만
대여 방식으로 무려 145년만에 한국으로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직지십체요절은 프랑스에서도
반환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의 문제로
한국으로 반환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만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박병선 박사의 업적이 뒤늦게 인정받으면서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2일 선종하시면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선종하시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병인양요에
관한 저술 준비를 하다가 눈을 감으셨습니다.
박병선 박사님의 유언
'내가 죽으면 노르망디 해변에 뿌려주세요.
그러면 언젠가 흘러 흘러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난 그렇게라도 조국에 머물고 싶어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활자본에 대해서
아주 놀라운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직지심체 요절보다 무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요.
바로 남명증도가 입니다.
남명증도가는 2012년 한국의 758호 보물로 지정되었고
직지심체요절과 다르게 쭉 한국에 있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직지보다
먼저 만들졌다는 주장들이 나오는 걸까요?
남명증도가(남명천상송증도가)의 10여종은
모두 목판이라고 판명이나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인 '공인본'에서
수 많은 금속활자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공인본'이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가지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고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백방으로 찾아다닌 결과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임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90년간의 오해를 벗고
금속활자본 인것으로 완전 인정 받는다면
직지심체요절보다 무려 13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된다고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국이 세계최초 금속 활자
발명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국 #프랑스 #유네스코 #세계최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방치되어 있던
한국의 물건을 찾은 한국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서양의 성역으로 불리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인
요하네스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섰던 한국의 금속활자를
발견했다고 발표를 했으나...
전 세계 학자들에게 박수가 아닌
엄청난 비난과 무시를받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1923년 경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여성 최초로 유학비자를 받은 박병선 박사는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전 세계의 역사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소르본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정말 학구열에 불탔던 박병선 박사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유학길에 오를 때 스승인
이병도 교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한국으로부터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에서 반드시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는데요.
하지만 약 100년 전 프랑스로 넘어간 물건은
어디에 있는지 작은 단서 조차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 한 결과,
그녀가 택한 방법은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1967년부터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동양 문헌실을 모두 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려 13년 동안 도서관을 서적을
샅샅히 뒤졌습니다.
그런데 한국 고서를 정리하던 중
구석에 끼여있던 오래된 고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꺼내든 그녀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 오래된 고서가 놀랍게도
또 다른 우리의 보물
'직지심체요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발견은 그녀에겐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한국의 금속활자본으로
1372년에 제작하기 시작했고
1377년에 간행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일부는 직지심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정확한 표현은 직지심체요절이 맞는 표현입니다.
1972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열린 고서 전시전에서
박병선 박사는 새로운 최초의 존재를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엄청난 발견 앞에 박수 갈채가 아닌
수 많은 학자들이 그녀를 비판하면서
그럴리 없다는 무시가 날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모두 잘아시는 것처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나라에서
그보다 더 빠른 금속 활자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박병선 박사는 혼자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야하는
엄청난 시련을 맡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진행되었던 국제적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고 입증하는데 온힘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구텐베르크보다 75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에서
한국의 직지심체요절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박병선 박사는 홀로 프랑스에 연구하면서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내고 만 것이죠.
이 사건은 정말 전 세계 수많은 학자들을
멘붕에 빠뜨린 사건이라고 합니다.
200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 유산으로
직지심체요절이 오르게 되는데
사실상 박병선 박사가 해낸 것이나
다름 없는 정말 다단한 업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병선 방사를
'직지대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외규장각의궤의 행방을 알 수 없었기때문인데요.
1975년 박병선 박사는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외규장각의궤를 찾기 위해 파손된 책들을 모아둔
프랑스국립도서관 베르사유의 별관 창고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왠 한국 고서를 발견하게 되었는,
책을 펼친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합니다.
이 한국고서가 바로 그토록 찾아 해매던
외규장각 의궤였던 것입니다.
조선왕실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았던 날
온 몸이 마비가 될 정도로 감동했다고 합니다.
일생을 바쳐서 그토록 찾아해메던 것을 찾았으니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네요...
그런데...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리면서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측으로부터
사표를 강요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쫓겨나듯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서
계속 연구를 했어야 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10년이 넘도록 개인 자격으로 매일 가서
한국의 역사를 되찾는데 몰두했습니다.
박병선 박사의 모든 연구를 담은 '조선조의 의궤'
책이 출간되면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반환 운동이 일어났고 더이상 못본척할 수 없었던
프랑스 정부는 2011년 6월 조금 황당하지만
대여 방식으로 무려 145년만에 한국으로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직지십체요절은 프랑스에서도
반환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의 문제로
한국으로 반환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만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박병선 박사의 업적이 뒤늦게 인정받으면서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2일 선종하시면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선종하시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병인양요에
관한 저술 준비를 하다가 눈을 감으셨습니다.
박병선 박사님의 유언
'내가 죽으면 노르망디 해변에 뿌려주세요.
그러면 언젠가 흘러 흘러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난 그렇게라도 조국에 머물고 싶어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활자본에 대해서
아주 놀라운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직지심체 요절보다 무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요.
바로 남명증도가 입니다.
남명증도가는 2012년 한국의 758호 보물로 지정되었고
직지심체요절과 다르게 쭉 한국에 있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직지보다
먼저 만들졌다는 주장들이 나오는 걸까요?
남명증도가(남명천상송증도가)의 10여종은
모두 목판이라고 판명이나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인 '공인본'에서
수 많은 금속활자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공인본'이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가지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고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백방으로 찾아다닌 결과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임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90년간의 오해를 벗고
금속활자본 인것으로 완전 인정 받는다면
직지심체요절보다 무려 13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된다고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국이 세계최초 금속 활자
발명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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